강원도 여행 중 비가 쏟아지던 날, 주인아주머니가 내밀어 주신 뚝배기 하나가 제 음식 인생을 바꿔놨습니다. 그게 감자 옹심이였습니다. 그때까지 이름도 들어본 적 없었는데, 한 입 먹자마자 수제비와도 다르고 떡과도 다른 그 묘한 쫄깃함에 완전히 반해버렸습니다. 집에 돌아오자마자 직접 만들어봤고, 첫 번째 시도에서 처참하게 실패했습니다. 그 실패 덕분에 지금은 제법 자신 있게 만들 수 있게 됐습니다.

첫 실패가 가르쳐 준 것들
솔직히 처음엔 이렇게 공이 많이 드는 음식인지 몰랐습니다. 감자를 갈아서 물을 짜고 반죽하면 되는 거 아닌가 싶었거든요. 그 가벼운 마음이 화근이었습니다.
첫 번째 시도에서 제가 저지른 실수는 감자의 갈변(褐變) 현상을 막지 못한 것이었습니다. 갈변 현상이란 감자나 사과 같은 식재료가 공기에 노출됐을 때 폴리페놀 산화효소가 반응하면서 색이 누렇거나 갈색으로 변하는 현상을 말합니다. 믹서에 감자만 넣고 갈았더니 순식간에 거무죽죽한 색이 올라왔고, 반죽 자체가 보기 싫어졌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양파 1/4쪽을 감자와 함께 갈면 이 갈변을 억제할 수 있습니다. 양파에 들어 있는 황 화합물 성분이 산화 반응을 방해하기 때문입니다. 직접 겪어보니 이 한 가지 차이가 완성된 옹심이의 색감을 완전히 바꿔놓더라고요.
더 치명적인 실수는 물 짜기였습니다. 자루망에 갈아낸 감자를 넣고 대충 몇 번 쥐어짰더니 반죽이 질척거렸고, 끓는 육수에 넣자마자 옹심이가 다 풀어져 버렸습니다. 그냥 감자 죽이 됐습니다. 국가농식품정보포털에 따르면 감자의 수분 함량은 품종에 따라 75~80%에 달합니다(출처: 농사로). 즉, 감자 자체가 워낙 수분이 많은 식재료이기 때문에 이 물을 충분히 제거하지 않으면 반죽이 제 형태를 유지하기 어렵습니다. 그 사실을 몸으로 배운 게 첫 번째 실패였습니다.
물 짜기, 생각보다 훨씬 중요합니다
두 번째 시도부터는 물 짜기를 완전히 달리 했습니다. 자루망에 넣고 한 번 짜고 끝내는 게 아니라, 손이 아플 정도로 꾹꾹 눌러 짜기를 반복했습니다. 처음엔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을 만큼 세게 쥐어짰는데, 그러고 나서야 비로소 건더기가 손으로 쥐었을 때 뭉쳐지는 상태가 됐습니다.
일반적으로 레시피에서는 그냥 꾹 짜면 된다고 나와 있는데, 제 경험상 이건 좀 다릅니다. 손에 힘이 없는 분들이나 처음 만드는 분들은 이 기준이 모호하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저는 더 이상 물이 한 방울도 나오지 않을 때까지, 그리고 건더기를 손으로 꽉 쥐었을 때 그 형태가 그대로 유지될 때까지를 기준으로 삼았더니 실패가 없었습니다.
물을 짠 뒤에는 자루망 안의 건더기를 그릇에 덜어놓고, 짠 즙은 30분 이상 그대로 뒀습니다. 이렇게 하면 전분(澱粉)이 바닥으로 가라앉습니다. 전분이란 식물이 광합성으로 만들어낸 포도당이 결합된 다당류로, 물에 녹지 않고 가라앉는 성질이 있습니다. 쉽게 말해 감자 속 순수한 녹말 성분만 분리해 내는 과정입니다. 30분이 지났을 때 그릇 바닥에 하얗게 앙금이 깔리는 걸 눈으로 직접 확인했을 때는 솔직히 좀 신기했습니다. 윗물을 조심스럽게 버리고 남은 이 생전분을 감자 건더기와 섞으면 반죽의 점성(粘性)이 확실히 달라집니다. 점성이란 반죽이나 액체가 늘어지거나 달라붙는 성질을 말하는데, 이 점성이 충분해야 옹심이가 육수 안에서 풀어지지 않고 쫄깃하게 익습니다.
초보자가 물 짜기에서 꼭 확인해야 할 기준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자루망을 짰을 때 더 이상 물이 나오지 않는 상태
- 건더기를 손으로 꽉 쥐었을 때 형태가 그대로 유지되는 상태
- 건더기를 손으로 눌렀을 때 표면에 물기가 배어나오지 않는 상태
이 세 가지를 모두 충족해야 반죽이 제대로 잡힙니다.
녹말 반죽, 농도가 성패를 가릅니다
반죽 단계에서도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었습니다. 레시피에는 감자 전분을 수북하게 네 스푼 넣으라고 나와 있는데, 감자 크기나 수분 함량이 매번 달라서 이 양이 딱 맞아떨어지는 경우가 드뭅니다. 제가 처음 만들 때 분량대로 넣었는데도 반죽이 너무 묽어서 전분을 추가로 한 스푼 더 넣었습니다.
제 경험상 반죽 농도의 기준은 이렇습니다. 반죽을 손바닥에 올려놓고 동그랗게 굴렸을 때 표면이 매끄럽게 잡히고 손에 달라붙지 않을 정도면 적당합니다. 너무 물러서 손에 다 묻어나면 전분을 조금씩 추가하면 됩니다. 여기서 중요한 건 브로콜리를 넣을 때입니다. 브로콜리를 데쳐서 다지면 수분이 생기는데, 이 수분이 반죽 농도에 영향을 줍니다. 그래서 브로콜리를 넣은 뒤 반죽 상태를 다시 한번 확인하는 것이 좋습니다.
육수는 멸치와 다시마를 우린 것을 사용했는데, 이때 멸치를 전자레인지에 20초 돌린 뒤 사용하면 비린내가 현저히 줄어듭니다. 이 방법은 단백질 변성(蛋白質變性) 원리를 활용한 것입니다. 단백질 변성이란 열이나 화학적 처리에 의해 단백질의 구조가 변하는 현상으로, 멸치에서 비린내를 유발하는 단백질 성분이 짧은 가열로 먼저 변성되면서 육수에 녹아나는 양이 줄어드는 원리입니다. 농촌진흥청의 식품 성분 연구에 따르면 멸치의 주요 비린내 성분은 트리메틸아민(TMA)으로, 이 성분은 열에 의해 휘발되거나 변형됩니다(출처: 농촌진흥청). 이 작은 손질 하나가 완성된 옹심이의 국물 맛을 훨씬 깔끔하게 만들어 줍니다.
비 오는 날 직접 만든 감자 옹심이를 먹으며 든 생각은, 이 음식이 단순한 한 끼 이상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공이 많이 들고 손도 꽤 아프지만, 그 쫄깃한 식감은 그만한 수고를 들일 가치가 충분합니다. 처음 만드신다면 물 짜기와 녹말 반죽 농도, 이 두 가지만 제대로 잡으시면 나머지는 크게 어렵지 않습니다. 강원도 그 작은 식당에서 처음 받아 든 뚝배기 맛을 집에서도 충분히 낼 수 있습니다. 제철 감자가 나오는 지금, 한 번 도전해 보시길 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