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한 체력 기초 만들기는 20대에 해야 한다고 막연히 생각했다. 그런데 30대 중반에 계단 몇 칸에 숨이 차는 나를 발견하고서야 기초부터 다시 쌓기 시작했다. 화려한 운동법도, 비싼 보충제도 아니었다. 수면, 걷기, 식사 타이밍이라는 가장 기본적인 것들을 제대로 지키는 것이 전부였고, 그게 전부였다는 사실이 오히려 부끄러웠다.

계단 세 칸에서 무너진 자존심
그날을 아직도 또렷이 기억한다. 지하철 3호선 환승 통로였다. 에스컬레이터가 고장 나서 계단을 올라야 했는데, 겨우 세 칸 정도 올라갔을 뿐인데 숨이 턱 막혔다. 옆에서 60대로 보이는 아주머니가 나를 가볍게 추월해 올라가셨다. 그 순간의 민망함이란. 나는 그때 만 34살이었다. 집에 돌아오는 내내 그 장면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다. 체력이 나쁘다는 건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 정도인 줄은 몰랐다. 책상 앞에 앉아 있는 시간이 워낙 길다 보니 걷는 일 자체가 거의 없었고, 점심은 자리에서 샌드위치로 때우는 날이 부지기수였다. 퇴근 후에는 피곤하다는 핑계로 소파에 누워 핸드폰을 보다가 잠들었다. 그 생활이 몇 년째 이어졌다. 문제는 그 생활이 나쁘다는 걸 알면서도 뭔가를 바꿀 의지가 생기지 않았다는 것이다. 피곤하니까 운동할 에너지가 없고, 운동을 안 하니까 더 피곤해지는 악순환이었다. 헬스장 등록을 세 번 했다가 세 번 다 한 달을 못 채우고 그만뒀다. 매번 처음부터 너무 무리하게 시작했다. 전날까지 운동을 안 하던 사람이 갑자기 매일 1시간씩 헬스장을 간다는 게 지속될 리 없었다. 건강한 체력 기초 만들기라는 개념을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한 건 그 지하철 계단 사건 이후였다. 체력을 키운다는 게 단순히 근육량을 늘리거나 살을 빼는 개념이 아니라는 걸 그때 처음 제대로 이해했다. 기초 체력이란 일상적인 활동을 무리 없이 해낼 수 있는 몸의 바탕이다. 계단을 오르고, 무거운 짐을 들고, 오래 걸어도 쉽게 지치지 않는 몸. 그게 기초였다. 그 기초가 무너져 있다는 걸 계단 세 칸이 알려줬다. 당황스럽고 창피했지만, 동시에 이제라도 알았으니 다행이다 싶은 마음도 들었다. 그날부터 이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접근하기로 했다. 헬스장 등록은 일단 보류했다. 대신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것부터, 아주 작은 것부터 시작하기로 했다. 실패하지 않을 크기로. 처음에 정한 건 단 하나였다. 매일 저녁 15분을 걷는 것. 운동이라고 부르기도 민망한 수준이었다. 하지만 그 민망한 것을 꾸준히 하는 게 헬스장을 작심삼일로 다니는 것보다 낫다는 걸 이미 세 번의 실패로 배웠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그 선택이 맞았다. 그리고 그 15분짜리 산책이 지금의 루틴을 만든 출발점이 됐다.
기초란 결국 반복이 쌓인 모양이었다
건강한 체력 기초를 다시 만드는 과정에서 내가 가장 먼저 집중한 건 의외로 운동이 아니었다. 수면이었다. 당시 나는 평균 5시간 30분 정도 잤다. 새벽 1시쯤 잠들고 오전 6시 40분에 알람으로 억지로 일어나는 패턴이었다. 주말에 몰아자는 것으로 보충하려 했지만, 그게 오히려 월요일 아침을 더 힘들게 만든다는 걸 한참 후에 알았다. 수면 리듬을 망가뜨리기 때문이다. 수면 시간을 7시간으로 늘리기 위해 취침 시간을 자정으로 당겼다. 처음 2주는 자정에 누워도 잠이 오지 않았다. 억지로 눈을 감고 있다가 결국 핸드폰을 집어 드는 날이 반복됐다. 그래서 전략을 바꿨다. 취침 1시간 전부터 조명을 낮추고, 핸드폰은 아예 방 밖에 뒀다. 불편했다. 처음 사흘은 정말 할 게 없어서 멍하니 앉아 있었다. 그런데 그 멍함이 졸음으로 연결되더니, 일주일이 지나자 11시 반만 되면 자연스럽게 눕고 싶어졌다. 몸이 리듬을 만들기 시작한 것이다. 수면이 자리를 잡고 나니 신기하게도 낮의 에너지가 달라졌다. 오후 2시쯤 찾아오던 극심한 졸음이 줄었고, 퇴근 후 소파에 쓰러지는 빈도도 낮아졌다. 그 여유가 저녁 15분 걷기를 지속하게 해 줬다. 걷기는 처음 한 달을 15분으로 유지했다. 의도적으로 늘리지 않았다. 이번에는 무너지지 않는 게 목표였기 때문이다. 두 번째 달부터 25분으로 늘렸고, 세 번째 달에는 걷다가 100미터 정도 가볍게 뛰는 구간을 섞었다. 네 번째 달에는 30분 중 10분을 달렸다. 지금은 주 4회 30분씩 가볍게 달리는 게 어색하지 않다. 딱 1년 전에 계단 세 칸에 헉 소리를 내던 사람이. 식사는 거창하게 바꾸지 않았다. 단 두 가지만 고쳤다. 첫째는 아침을 먹는 것이다. 전에는 아침을 거의 건너뛰었다. 아침을 먹지 않으면 오전에 집중이 안 되고, 점심을 과하게 먹고, 오후에 급격히 졸려지는 패턴이 반복됐다. 아침에 간단하게라도 먹기 시작했더니 그 악순환이 끊겼다. 거창한 메뉴가 아니어도 됐다. 달걀 하나, 바나나 하나면 충분했다. 둘째는 저녁 과식을 줄이는 것이었다. 아침을 건너뛰고 점심을 대충 먹다 보니 저녁에 폭식하는 경향이 있었다. 아침과 점심을 챙기니 저녁 식사량이 자연스럽게 줄었다. 식단을 통제하려고 의지력을 쓰지 않았는데 저절로 조절된 것이다. 마지막으로 빠질 수 없는 게 수분 섭취였다. 하루에 물을 얼마나 마셨는지 체크해 봤더니 커피 두 잔 외에는 거의 마시지 않았다. 물병을 책상 위에 올려두고 눈에 보일 때마다 한 모금씩 마시는 것만으로도 달랐다. 오후 두통 빈도가 줄었고, 피부도 덜 땅겼다. 탈수가 피로감을 증폭시킨다는 게 이론이 아니라 직접 체감됐다.
1년 후, 그 계단 앞에 다시 섰을 때
지난달에 그 지하철 환승 통로를 다시 지나게 됐다. 별생각 없이 계단을 올라가다가 문득, 숨이 차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다. 아, 이게 달라진 거구나. 감동적인 순간이라기보다는 그냥 조용하고 담담한 확인이었다. 근사하게 바뀐 몸이 아니라, 당연히 해낼 수 있는 몸이 됐다는 것. 그게 기초 체력이 생겼다는 의미라는 걸 그 순간 알았다. 건강한 체력 기초 만들기를 돌아보면, 결국 화려한 방법은 하나도 없었다. 일찍 자고, 매일 걷고, 아침을 먹고, 물을 마셨다. 유행하는 운동법도, 비싼 단백질 보충제도 없었다. 그런데 그게 다였다. 그 단순한 것들을 꾸준히 하는 게 왜 그렇게 어려웠을까 싶기도 한데, 방법이 어려운 게 아니라 지속이 어려운 것이었다. 내가 이번에 달랐던 건 목표의 크기를 줄인 것이다. 이전에는 "3개월 안에 10킬로 감량" 같은 숫자를 목표로 삼았다. 결과에 집착하니 과정이 고통스러웠고, 결과가 빨리 안 나오면 포기했다. 이번에는 "오늘 15분 걷기"가 목표였다. 그것만 하면 오늘은 성공이었다. 그 성공이 매일 쌓이니 어느 순간 몸이 달라져 있었다. 체력이 기초라는 말이 추상적으로 들릴 수 있다. 하지만 실제로 체력이 생기고 나면 다른 것들이 달라진다는 걸 경험하게 된다. 집중력이 올라가고, 감정 기복이 줄고, 아침에 일어나는 게 덜 힘들어진다. 체력이 삶 전체의 기반이라는 말이 실감된다.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사람이 나처럼 계단 앞에서 멈칫했거나, 조금만 걸어도 지친다고 느끼고 있다면, 딱 하나만 시작해보길 권한다. 내일 저녁, 밥 먹고 나서 동네를 15분 걷는 것. 운동복 없어도 되고, 운동화가 딱히 없어도 된다. 그냥 나가서 걷는 것. 그게 기초를 다시 쌓는 첫 번째 벽돌이다. 거창하게 시작하면 무너진다. 작게 시작해야 오래간다. 나는 그걸 세 번 실패하고서야 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