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을 따로 쑤지 않고도 국물에 점도가 생기는 방법이 있습니다. 삶은 늘보리쌀을 믹서에 함께 갈아 넣는 방식인데, 저는 이걸 알고 나서 밀가루 풀이나 찹쌀풀은 아예 안 쓰게 됐습니다. 봄에 담그는 보리 열무김치, 생각보다 진입 장벽이 낮고 실패 포인트도 명확합니다.

절임이 열무김치의 절반이다
열무김치를 처음 담가봤을 때 저는 절이는 시간을 짧게 잡았습니다. 대충 40분쯤 두고 헹궈서 양념을 버무렸는데, 먹을 때 풋내가 올라오고 식감이 물컹하면서도 억셌습니다. 그때는 왜 그런지도 몰랐는데, 원인은 단 하나였습니다. 숨이 충분히 죽지 않은 것이었습니다.
열무 절임에서 핵심은 삼투압(osmosis)입니다. 삼투압이란 소금 농도 차이에 의해 세포 내부의 수분이 밖으로 빠져나오는 현상인데, 이 과정이 충분히 진행돼야 열무 특유의 풋내가 빠지고 양념이 잘 스며들 수 있는 조직 상태가 됩니다. 소금물 400ml에 굵은소금 반 컵을 녹여 뿌리면서 1시간 30분을 재워야 하고, 중간에 두 번 뒤집어줘야 한쪽만 절여지는 것을 막을 수 있습니다. 저는 두 번째 시도에서 이 과정을 제대로 지켰는데, 식감이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뿌리 부분을 버리지 않고 칼로 살짝 긁어 때를 제거한 후 반으로 나눠 쓰는 방식도 그때 처음 해봤습니다. 버리는 게 맞다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는데, 저는 뿌리까지 살리는 것이 씹는 맛을 확실히 살려준다고 봅니다. 식감의 완급이 생기면서 먹는 재미가 달라집니다.
절임 과정에서 확인해야 할 핵심 포인트는 다음과 같습니다.
- 소금물 농도: 물 400ml + 굵은소금 반 컵 기준
- 총 소금 사용량: 소금물 외 뿌리는 소금 합쳐 약 1컵 반
- 절임 시간: 최소 1시간 30분, 중간에 2회 뒤집기
- 세척: 절임 후 물을 가득 채워 두 번 씻어 흙과 소금기 제거
보리쌀이 풀 역할을 하는 이유
열무김치 양념에 풀을 쓰는 이유는 국물의 점도(viscosity)를 높이기 위해서입니다. 점도란 액체의 끈끈한 정도를 나타내는 말로, 점도가 적당해야 양념이 재료에 잘 붙고 숙성 과정에서 유산균 발효가 고르게 일어납니다. 일반적으로는 밀가루 풀이나 찹쌀풀을 쑨다고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 삶은 늘보리쌀을 쓰니 국물이 더 깔끔하고 개운한 맛이 났습니다.
보리쌀 준비 방식은 이렇습니다. 200ml 컵 한 컵 분량을 2시간 불린 다음 약불에서 30분 삶아두는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 전분이 호화(gelatinization)되는데, 호화란 전분 입자가 물을 흡수해 팽창하면서 점성을 띠는 상태로 변하는 현상입니다. 이 상태의 보리쌀을 믹서에 함께 갈면 별도의 풀 없이도 국물에 자연스러운 점도가 생깁니다.
다만 솔직히 이 준비 과정은 예상보다 손이 많이 갑니다. 불리는 데 2시간, 삶는 데 30분이 필요하고 열무 절임도 1시간 30분이 걸립니다. 총 소요 시간을 계산하면 준비부터 완성까지 넉넉히 4시간 이상 잡아야 합니다. 처음 만드는 분께는 전날 저녁에 보리쌀을 불려두고 아침에 삶아놓는 방식을 권하고 싶습니다. 이걸 사전에 알고 시작하는 것과 모르고 시작하는 것은 완성도 면에서 차이가 납니다.
건고추 10개를 씻어서 믹서에 넣고 양파, 배, 홍고추, 청양고추, 생강, 마늘, 새우젓, 멸치 액젓을 함께 가는 방식도 처음 해봤는데, 고춧가루만 넣을 때와 비교하면 칼칼한 깊이가 다릅니다. 건고추를 직접 갈면 캅사이신(capsaicin) 성분이 고춧가루 상태보다 더 고르게 분산되는 것으로 보입니다. 캅사이신이란 고추의 매운맛을 내는 알칼로이드 화합물로, 항산화 작용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출처: 식품의약품안전처).
물 양과 간 맞추기, 처음엔 기준이 없다
국물 양 조절이 생각보다 까다롭습니다. 처음 레시피대로 물 1L를 넣고 보면 국물이 부족한 느낌이 납니다. 실제로 저도 두 컵을 더 넣어서 결국 총 2.4L가 됐는데, 처음 만드는 분 입장에서는 얼마나 더 넣어야 할지 기준이 없어서 당황하기 쉽습니다. 처음부터 2.4L로 시작하거나, 아니면 8.7L 통 기준으로 국물이 재료의 80% 높이까지 오면 적당하다는 식의 시각적 기준을 알려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간을 맞출 때는 천일염과 원당을 각 2스푼씩 넣고 녹을 때까지 젓습니다. 여기서 천일염은 정제염과 달리 미네랄이 살아있는 소금인데, 쓴맛이 덜하고 발효에도 유리하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채 썬 양파와 쪽파가 들어가면 삼투압에 의해 수분이 빠져나오면서 간이 희석되기 때문에 넣기 전 국물은 약간 간간한 상태여야 한다는 설명은 맞습니다. 다만 "약간 간간하다"는 표현이 처음엔 기준이 모호합니다. 제 경험상 짠 라면 국물보다 조금 약한 정도라고 생각하면 크게 벗어나지 않습니다.
유산균 발효(lactic acid fermentation)가 제대로 일어나려면 온도와 염도 관리가 중요합니다. 유산균 발효란 유산균이 당을 분해해 젖산을 생성하는 과정으로, 김치 특유의 시원하고 산미 있는 맛을 만들어냅니다. 완성 후 베란다에서 하루 정도 실온 숙성을 거친 뒤 냉장 보관하면 발효가 적당한 시점에서 멈추고 오래 두고 먹을 수 있습니다. 농촌진흥청 자료에 따르면 김치의 적정 숙성 온도는 0~5도 사이로, 냉장 보관 시 유산균이 서서히 활동하며 깊은 맛이 생깁니다(출처: 농촌진흥청).
숙성 후에 소면 삶아서 국물에 말아 먹는 방식이 생각보다 훨씬 맛있었습니다. 한 번 먹고 그다음 날도 찾게 됐으니, 만들어두면 며칠은 밥 걱정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봄에 마트에서 열무 한 단을 사 온 것이 보리 열무김치의 시작이었습니다. 두 번의 실패와 수정 끝에 제가 내린 결론은, 이 김치의 성패는 절임과 보리쌀 준비 두 가지에서 갈린다는 것입니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이 두 가지를 제대로 지키면 국물까지 끝까지 먹게 되는 김치가 나옵니다. 처음 담가보실 분이라면 보리쌀을 전날 준비해 두는 것부터 시작하시길 권합니다. 그게 전체 과정을 훨씬 수월하게 만들어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