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수 식단 특징을 처음 진지하게 들여다본 건 외할머니가 97세까지 사신 이유가 궁금해서였다. 특별한 보약도, 비싼 건강식품도 없었다. 그냥 매일 된장국에 나물 몇 가지, 잡곡밥이 전부였다. 그 단순한 밥상이 왜 그토록 강한지를 파악하면서, 블루존 식단과 지중해 식단, 오키나와 식단의 공통점까지 함께 정리해 봤다.

97세 외할머니의 밥상에는 특별한 게 없었다
외할머니는 올해로 돌아가신 지 3년이 됐다. 향년 97세. 마지막 1년을 제외하면 거의 혼자 거동하셨고, 치매도 없으셨다. 명절마다 할머니 댁에 가면 항상 된장국 냄새가 먼저 났다. 아침마다 끓이신 된장국, 직접 담근 깍두기와 배추김치, 텃밭에서 뜯어온 상추와 고추. 그게 할머니의 밥상이었다. 화려한 음식은 없었다. 고기는 명절에나 드셨고, 생선도 자주는 아니었다. 그런데 97년을 그 밥상으로 사셨다.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나서 한참 후에, 이런 생각이 들었다. 저 단순한 밥상이 혹시 장수의 이유 중 하나였을까. 그냥 유전이겠지 하고 넘길 수도 있었는데, 외할아버지는 65세에 일찍 돌아가셨다는 게 마음에 걸렸다. 같은 집에서 수십 년을 사셨는데 수명이 그렇게 차이 난다면, 생활 습관이나 식사가 달랐다는 뜻이기도 했다. 기억을 더듬어보니 외할아버지는 고기를 좋아하셨고 술도 즐기셨다. 할머니는 고기보다 나물이었고 술은 입에도 안 대셨다. 그 기억이 장수 식단 특징에 대해 직접 공부해 보는 계기가 됐다. 처음에는 인터넷 검색으로 시작했다가, 관련 책 몇 권을 찾아 읽었다. 블루존이라는 개념을 그때 처음 알게 됐다. 블루존은 세계적으로 100세 이상 장수하는 사람들이 집중된 지역을 부르는 말로, 이탈리아 사르데냐, 일본 오키나와, 그리스 이카리아, 코스타리카 니코야 반도, 미국 로마린다 이렇게 다섯 곳이 대표적이다. 지리적으로 전혀 다른 이 지역들에 공통점이 있다는 게 흥미로웠다. 그리고 그 공통점들이 할머니의 밥상과 겹치는 부분이 많아서 더 몰입해서 읽게 됐다. 장수하는 사람들의 식단이 고급스럽거나 특별할 거라는 선입견이 있었다. 하지만 실제로 들여다보면 오히려 소박하고 단순하다. 가공되지 않은 식재료, 채소 중심, 소식, 발효 식품. 이 네 가지가 반복적으로 등장했다. 외할머니의 밥상이 정확히 그랬다. 그때 처음으로, 건강하게 오래 사는 것이 어쩌면 거창한 방법이 아니라 아주 오래된 방식에 답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블루존 밥상에서 반복되는 네 가지 공통점
블루존 다섯 지역의 식단을 비교하면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건 채소와 콩류의 비중이었다. 오키나와에서는 고야라는 여주, 고구마, 두부가 주식에 가까웠다. 사르데냐에서는 병아리콩, 파바콩 같은 콩류와 채소로 만든 수프가 하루에 한 번 이상 식탁에 올랐다. 이카리아 섬사람들은 야생 채소를 직접 채취해서 먹는 문화가 지금도 남아있다고 한다. 고기는 있어도 주연이 아니라 조연에 가까웠다. 일주일에 한두 번, 소량이 전부였다. 이 부분이 나에게는 충격이었다. 단백질은 고기로 먹어야 한다는 생각이 워낙 강하게 박여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콩류가 훌륭한 단백질 공급원이라는 걸 알면서도 식단에서 콩을 적극적으로 챙긴 적이 없었다. 블루존 자료를 보고 나서 집에서 두부를 먹는 빈도가 늘었다. 거창한 식단 개편이 아니라 그냥 반찬 중 하나를 두부로 바꾸는 것부터 했다. 두 번째 공통점은 발효 식품이었다. 사르데냐의 양유 치즈, 이카리아의 산양유 요구르트, 오키나와의 된장, 한국으로 치면 김치와 청국장이 이 자리에 해당한다. 발효 식품이 장 내 환경에 미치는 영향이 면역력과 노화 속도에 관련된다는 연구들이 최근 늘고 있는데, 블루존 지역들은 이미 수백 년 전부터 발효 식품을 일상적으로 먹어왔다. 과학이 이유를 설명하기 훨씬 전부터 몸으로 먼저 알고 있었던 셈이다. 외할머니가 직접 담그신 된장과 김치가 여기에 딱 맞았다. 시판 제품이 아니라 직접 담근 발효 식품이다. 할머니는 장을 담그는 걸 큰 행사처럼 여기셨다. 해마다 날을 잡아 된장을 담그고, 계절마다 다른 김치를 담그셨다. 그 행위 자체가 단순히 음식을 만드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었다는 걸, 영양학적으로도 이제는 이해할 수 있다. 세 번째는 소식이었다. 오키나와에는 '하라 하치 부'라는 말이 있다. 배가 80퍼센트 찼을 때 숟가락을 놓는다는 뜻이다. 이 개념이 거창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천천히 먹고, 포만감을 느끼기 전에 멈추는 습관이다. 이게 현대인에게 얼마나 어려운지는 직접 해보면 안다. 나도 시도해 봤는데, 빨리 먹는 습관이 있어서 처음 두 달은 80퍼센트가 어느 정도인지 감이 오지 않았다. 천천히 먹으면서 중간에 멈추는 연습을 계속하다 보니 식후 더부룩함이 줄었다. 네 번째는 가공식품의 부재였다. 블루존 지역 사람들의 식단에는 공통적으로 식품 첨가물, 정제 설탕, 가공된 탄수화물이 거의 없었다. 밀가루도 있지만 통밀이고, 빵도 있지만 발효빵이었다. 오키나와의 고구마는 정제 탄수화물이 아니라 식이섬유가 풍부한 복합 탄수화물이다. 장수 식단에서 탄수화물을 먹지 않는 게 아니라 어떤 탄수화물을 먹느냐가 핵심이었다. 흰쌀밥과 잡곡밥, 흰 빵과 통밀빵의 차이처럼 재료의 가공 정도가 달랐다.
할머니의 밥상이 결국 정답에 가장 가까웠다
블루존 식단을 공부하면서 가장 인상 깊었던 건, 장수 식단이 어느 한 나라의 특별한 음식 문화가 아니라는 점이었다. 이탈리아, 일본, 그리스, 코스타리카, 미국의 특정 지역이 지리적으로 이렇게 다른데도 밥상의 원칙이 거의 같았다. 채소 중심, 발효 식품, 소식, 최소한의 가공. 이 네 가지가 반복됐다. 그리고 그게 전통적인 한국 밥상과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할머니 밥상이 새롭게 보이기 시작한 건 그 공부를 하고 나서였다. 예전에는 그냥 옛날 음식, 소박한 음식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사실 그게 가장 설계가 잘 된 식단이었다. 된장국에 들어가는 두부와 된장 자체가 단백질과 발효 식품을 동시에 해결하고, 텃밭에서 뜯어온 나물이 채소 섭취를 충당하고, 잡곡밥이 복합 탄수화물을 공급했다. 따로 설계한 게 아니라 수백 년의 경험이 쌓인 결과였다. 내가 이 공부를 통해 실제로 식단에서 바꾼 것들은 그리 대단하지 않다. 흰쌀밥에 잡곡을 섞었다. 반찬 중 하나를 두부나 콩 요리로 채웠다. 시판 된장 대신 재래시장에서 파는 전통 방식으로 만든 된장을 쓰기 시작했다. 먹는 속도를 의식적으로 늦췄다. 식후 과자와 간식을 줄였다. 이 정도가 전부였다. 그런데 그 변화를 반년 정도 유지하고 나니 눈에 띄는 게 생겼다. 소화가 예전보다 편해졌다. 식후 졸음이 줄었다. 피부가 조금 덜 건조해졌다. 체중은 크게 변하지 않았는데 몸이 덜 무겁게 느껴졌다. 이게 식단 하나의 효과인지 다른 생활 습관의 영향인지 정확히 분리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적어도 나쁜 방향으로 가는 건 없었다. 장수 식단 특징을 한마디로 정리한다면, 오래된 방식에 더 가깝다는 것이다. 새로 만들어진 건강식, 유행하는 다이어트 식단이 아니라 수백 년 전 사람들이 먹어온 방식. 가공하지 않고, 계절에 맞게, 소박하게 먹는 것. 97세까지 사신 외할머니의 밥상이 그 정답에 가장 가까웠다는 걸, 한참 돌아서 공부하고 나서야 알았다. 조금 더 일찍 알았더라면 더 자주 그 밥상을 눈에 담아뒀을 텐데, 그게 유일하게 아쉽다.